112호 : 남북 대학 교류의 의의와 전망 -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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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남북 관계는 분단 반세기의 적대적 대결 관계를 탈피하고 화해와 협력의 길로 들어섰다. 2000년 6월에 성공적으로 개최된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 관계 개선의 전환점이었다. 이 회담을 통해 남북은 적대와 대결을 통한 상멸(相滅)이 아니라 화해와 협력을 통한 상생(相生)의 관계로 접어들었다. 더구나 이 회담을 통해 남북 양측 정상이 합의하고 서명한 ‘6·15 남북 공동선언’은 ‘7·4 남북 공동성명’ 및 ‘남북 기본 합의서’와 더불어 남북한이 통일의 여정으로 가는 데 있어서 중대한 이정표로 남게 될 것이다. ‘7·4 공동성명’이 통일의 원칙과 정신을 제시한 것이고, ‘기본 합의서’가 통일 과정에서 남북이 해결해야 할 구체적인 내용들을 정리해 놓은 것이라면, ‘6·15 공동선언’은 보다 실질적으로 남북한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약속한 것이다. 더욱이 남북 정상회담은 남한과 북한 사회에서 두 정상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그 비중이 어떠한 남북회담에 비견될 수 없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는 다양한 종류의 회담이 개최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교류·협력 양상이 전개되는 등 활성화되었다. 네 차례의 장관급 회담, 국방 장관 회담, 외무장관 회담, 문화 장관 회담, 세 차례의 이산가족 상봉과 서신 교환,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 공동 입장 등 과거에는 그 자체로 남북 관계에 획을 그을 수 있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마치 봇물 터지듯이 벌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남과 북의 정치 지도자들이 대승적 견지에서 20세기 비운의 민족사를 마감하기 위해 마련한 정상회담을 성사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련의 관계 개선 움직임이 분단 반세기 동안 공고화된 남북한 간의 적대적 대결 상태를 일거에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만큼 한반도 분단 구조는 완고한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남북이 전쟁을 치른 바 있고, 수많은 분쟁을 벌였으며, 남북간에 체제와 이념, 정통성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겪고 있는 경제적 위기는 하루 아침에 극복되기 어려운 문제임이 입증되었다. 북한 정권은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수용하고 국제 사회와 교류·협력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대안이다.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 동의하고 이 자리에 나온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북한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전면적인 개방은 오히려 북한 체제의 위기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점진적이고 신중한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남북 대화의 교착 국면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남북간의 교류·협력은 분단 반세기 동안 고착된 분단 구조를 혁파하고, 북한의 만성적인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남북간 상호 이익의 폭을 넓히고 장차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여는 첩경인 것이다. 대학 교류 역시 넓게는 이러한 남북 교류·협력의 맥락에 위치하는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남북간의 점진적 화해와 협력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존에 진행해 왔던 정상회담 등 다양한 차원의 정부간 교류·협력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을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남북한의 민간 교류와 협력의 확대라는 문제에는 큰 의견의 차이가 없다. 이는 곧 민간 교류를 통한 사람과의 통일이 남북한 통일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는 점을 국민 모두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목적은 대학 교류가 남북 관계 개선 및 통일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대학 교류가 남북 관계 발전에서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대학 교류는 궁극적으로 남북 통합이 실현될 때에 대비하여 고등교육 기관의 통합을 어떠한 방향에서 준비해야 하는지를 가늠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기도 하다. 비록 현 시점에서 통합을 사고하는 것이 성급할 수 있지만 남북간의 이질화를 치유할 수 있는 가장 튼실한 토대는 바로 교육 체계의 통합이고 그 중 고등교육 기관의 통합은 보다 더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한 영역이다. 이 글은 남북 관계의 현실에서 볼 때 대학 교류는 많은 한계에 봉착해 있지만, 적극적으로 사고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Ⅱ. 정상회담과 남북 교류의 활성화목

지난 해 6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분단 이래 대립과 반목으로 점철되었던 남북 관계에 일대 전환을 가져온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남북한은 이를 계기로 각 분야별 정부 차원의 협력은 물론이며, 민간 차원에서의 경제, 사회, 문화 교류·협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모두 네 차례의 남북 장관급 회담이 개최되어 정상회담에서 양측 정상들이 합의한 ‘공동선언’의 구체적인 실천 문제 등을 논의하였으며, 또 지난해 9월에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국방 장관 회담이 개최되었다. 이러한 정부간의 화해와 협력 무드는 남북 적십자 회담을 통해 정상회담 이후 세 차례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가능하게 했으며, 두 차례의 경협 실무 접촉을 통해 투자 보장, 이중과세 방지, 상사 분쟁 해결 절차, 청산 결제 합의서에 대해 합의하고 작년 12월에 개최된 제 4차 장관급 회담에서 정식 서명하였다.

이 밖에도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한을 왕래하는 내국인이 1999년도에는 15만 4천여 명이던 것이 2000년도에는 21만 9천여 명으로 무려 30%가 급증하는 등 남북 교류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정상회담 이후 남한 언론사 사장단의 방북이 성사되고, 경의선 철도 및 도로 연결 사업, 임진강 수해 방지 공동 사업, 개성 공단 건설, 금강산 관광특구 지정 등에 관해 남북한 양측의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순탄하게 진행되던 남북 대화가 금년 들어 북한이 여러 가지 대내외적인 사정을 이유로 이에 소극적으로 임함으로써 다소 소강 상태에 접어들게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은 지난 3월 서울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제 5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 대해 일방적으로 불참을 통보하는 것을 시작으로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남북단일팀 참가 번복, 적십자 회담 연기 등을 통해 남북 관계가 교착 국면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가을 예정되었던 북한의 한라산 관광단 및 경제 시찰단 방문 등도 아직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이에 대한 논의는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선다. 다만 최근의 교착 상태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지적하고 싶다.

최근 남북 관계에 소강 국면이 조성되고 있지만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의 남북한 교류가 활성화되었던 데에는 정상회담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음에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정상회담의 한 번 개최로 남북 교류가 전면적으로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남북 교류가 점진적으로 발전해 오기는 했지만 분단 구조의 완전한 해체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남북 관계의 구조적 제약 때문에 점진적인 양상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교류 협력을 통한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점진적인 접근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런 맥락에서 대학 교류 역시도 더욱 더 점진적이고 신중한 접근이 요망된다.

Ⅲ. 남북 관계와 대학 교류의 역할

과거 반세기 동안 남북한 대학 교류는 정치적인 대립 상태하에서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했다. 대학 차원을 포함하여 학술 단체들이 추진했던 학술회의 등 교류 활동은 1989년 6월 12일 이후 2000년 12월까지 180건이 성사되어 매년 평균 15건 정도 이루어졌다.1) 그러나 현 정부 출범 이후인 1998년부터 2000년까지의 성사 건수가 68건임을 감안하면 1/3이 지난 3년 동안 집중해서 발생한 것이다. 학술 교류 활동이 시작된 것은 1989년 남북 고위급 회담이 개최되고 남북간에 해빙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가능했던 것이지만, 그 기폭제가 된 것은 현 정부의 대북 포용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남한 정부가 어떤 대북 정책을 추진하는가 하는 점과 남북 관계의 정치적인 상황이 학술 교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변수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학술 교류 활동 중에서도 대학 교류는 1998년 2월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른바 정경분리 원칙에 기초하여 화해·협력을 위한 포용 정책이 본격 착수되면서 시작되었다.

성균관대의 경우 총장 및 관계자들이 ’98년 4월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의 초청으로 방북하여 김일성종합대학(이하 김일성대), 고려성균관대학(이하 고려성균관), 김책공업대학(이하 김책공대) 관계자들과 학술 교류 방안을 논의했으며, 특히 고려성균관과 자매결연을 맺고 공동연구 및 교직원 상호방문 등 학술협력과 컴퓨터 등의 기자재 지원을 약속하였다. 성균관대는 이번 방북에서 컴퓨터와 부속기기 등 총 75대를 기증했으며, 김일성대의 박관오 총장과 고려·성균관의 김효관 총장을 9월 세계대학총장학술회의에 공식 초청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는 성사되지 못했다.2)

강원대의 경우 역시 총장을 비롯하여 남북농업학술교류위원회 소속 교수 5명이 같은 해 9월 북한 농업과학원 관계자들을 만나 농업 학술 교류를 위한 계획을 논의하고 원산농업대학과의 학술 교류를 위해 방북하였다. 경남대 역시 ’98년 9월 26일부터 7박 8일간 총장이 방북하여 남북한간의 학술 문화 교류를 논의하기 위해 북한 아·태평화위원회의 초청으로 방북하여 김책공대와 학술 교류를 위한 협력의향서를 교환하고 차후 현미경 등 기자재 지원을 합의하였다. 이외에도 연세의료원이 평양 의과대학에 의약품 및 실습 기자재를 지원하고, 남북한 의학 교육과정을 비교·분석하며, 북한의 의료 현황을 파악하는 동시에 상호 교류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3) 고려대는 1999년 11월 김정배 총장 등이 방북하여 단군 관련 유적 답사 및 김일성대와의 교류 방안을 협의하였다.

2000년에 들어와서는 대학간 교류 활동은 없었지만 학술 교류로서 선문대 이형구 교수, 동국대 김동현 교수가 개성 영통사지 조사 및 복원 계획을 협의하기 위하여 방북했으며, 고려대 강만길 명예교수(현 상지대 총장) 등이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초청으로 일제 강제 병합 자료 전시회 개최와 학술 교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하여 북한을 다녀왔다.4) 이와 같은 대학 교류 활동은 그 자체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지만 대학 교류의 활성화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보다 활발한 남북 교류가 이뤄지면서 금년 4월에는 동북아 교육문화협력재단의 곽선희 이사장과 연변과학기술대학의 김진경 총장이 북한의 교육 성과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 건립 및 운영에 대해 협의하고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 건립 계약서’를 체결하게 되었다. 이 사업은 남북한이 공동으로 북한에 대학을 설립하기 위한 사업으로, 대학이 건립되면 다양한 형태와 분야의 교육 및 학술 교류의 기반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사업이 구체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계기는 남북정상 회담 이후 새롭게 조성되는 남북한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 속에서 통일부가 북한측에 남북이 협력해 정보과학기술 분야 대학을 설립하는 문제를 제의한 이후 얻어진 값진 성과이다.5)

이 밖에도 과학기술 분야에 있어서 북한이 최근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정보기술(IT) 분야와 의료 분야를 비롯하여 생명과학 및 기상·대기환경 분야 등 기초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국내 대학과 연구기관이 북한측 해당 대학 및 연구기관과의 교류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이처럼 남북한 대학 교류는 정상회담 이후 조성되고 있는 남북한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한층 성숙시키는 데 일조를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단순한 학술 차원의 교류를 넘어서 다양한 인적, 물적 자원의 교류와 민족의 동질성 회복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거꾸로 보면 대학 교류는 정치적인 차원의 남북 관계가 성숙했을 때 비로소 활성화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아직은 남북 대학 교류가 전반적인 남북 관계에 비춰 봐도 미약한 수준이지만 앞으로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대학 교류도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학 교류가 정치적인 남북 관계에 의해 구속을 받는다 해도 대학 교류를 통해 남북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이질성을 감소시키려는 노력이 없다면 장차 남북 관계가 실질적으로 개선될 때 대학인들이 남북 관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대학 교류에 대한 보다 더 체계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내용이 마련되어야 한다.

Ⅳ. 대학 교류의 한계와 전망

어떤 사회든 교육은 체제 유지를 위한 국민들의 정치 사회화(political socialization)의 기능을 수행한다. 북한의 교육 역시 공산주의 사회인 북한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주요한 수단으로 기능해 왔다. 사상 중심의 교육을 강조하는 북한에서 그 사상은 다름 아닌 주체사상이다. 주체사상이란 사람 중심의 세계관과 인간관을 표방하지만, 그 사회적 표현의 핵심은 수령 중심의 체제에 있다. 북한 식으로 말하면 ‘수령의 혁명적 영도’야말로 북한 체제의 요체(要諦)인 셈이다. 수령을 뇌수(腦髓)에 비유한다면 그 둘레에 당이 있고, 인민이 있다. 수령은 당을 통해 인민을 공산사회로 이끌고 나가는 키잡이의 역할을 하며, 인민은 수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이와 같은 체제적 특성으로 인해 북한 교육의 원리에는 수령의 혁명투쟁 경력과 공산주의 이념을 인민들에게 교육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북한의 대학은 공산주의 사회 건설에 필요한 이른바 ‘혁명 간부’를 양성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즉 사회 각 분야에서 공산주의 이념을 철저히 구현하는 데 앞장 설 수 있는 고급 전문 지식인을 육성하는 것이다. 북한의 대학은 해방 직후인 1946년 10월 1일 설립된 김일성 종합대학을 모체로 하여 현재 대학은 280여 개, 고등 전문학교는 470여 개가 있다. 북한의 일반 고등교육 체계는 학업을 전문으로 하는 고등교육 체계로서 종합대학, 단과대학, 고등 전문학교, 그리고 공장 대학과 공장 고등 전문학교 등 특수 대학으로 분류할 수 있다. 최근에는 종합대학을 포함한 10여 개의 대학을 ‘중심대학’으로 선정하여 각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특성화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종합대학으로서는 인문 사회과학 및 기초과학 중심의 김일성종합대학, 공과 중심의 김책공업종합대학, 경공업 분야의 고려성균관대학 등 3개의 종합대학이 있으며, 중심 대학으로는 의과 중심의 평양의학대학, 농과 중심의 사리원계응상대학을 비롯하여 김형직사범대학, 평성이과대학, 평양건설건재대학, 평양기계대학, 평양경공업대학 등이 있다.

또한 각 분야에서 전문적인 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한 단과대학이 있고, 이와는 별도로 ‘현장 기사’를 양성하는 고등 전문학교가 있다. 그리고 직장인을 대상으로 일하면서 배우는 성인 교육기관들이 있는 데, 각지에 있는 공장 대학과 공장 고등 전문학교, 농장대학, 어장대학, 그리고 대학에 부설되어 있는 통신부와 야간부, 방송통신 교육기관 등이 그것이다.

북한의 고등교육 기관 체계를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평양에 설치되어 있는 중심 대학을 통한 엘리트 양성과 지방 단과대학 및 성인 교육기관에서 실시하는 대중 교육의 두 가지 기능이 비교적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 특히 종합대학이나 중심 대학들은 북한 고위 엘리트들의 산실이며, 적어도 이 대학들을 졸업해야 해당 분야의 간부로서 진출하게 된다.

둘째,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정치 사상성과 정치 조직 활동이 중시되며, 학생의 선발, 학교 운영, 그리고 교육과정 등이 철저하게 국가에 의해 통제될 뿐만 아니라 대학은 국가의 완전한 재정적 지원 하에 운영된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얘기하는 대학의 자율성은 인정될 수 없다. 최근 북한의 경제 형편이 악화되면서 대학에 대한 지원도 감소했으며, 특히 공과나 의과 대학은 실험용 기자재나 장비가 없어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셋째, 엘리트 양성 기관인 중심 대학과는 별도로 다수의 대중 고등교육 기관이 설치되어 있어서 대학간의 역할 분담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은 공산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이 중요하다고 보고, 노동자들의 기술 혁신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 따라서 순수 학문보다는 생산 활동에 필요한 분야를 연구하고 노동자들을 교육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북한의 대학은 대부분 이러한 기능을 담당하는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북한의 대학은 종합대학은 3개 대학만 있고, 나머지는 대부분 특정 분야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 특히 위에서 보듯이 중심 대학들 중 7개 대학과 단과대학들은 특정한 분야만을 전담하고 있어서 우리 식으로 말하면 특성화, 세분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수업 연한도 매우 다양하여 종합대학은 4년에서 6년까지 있으며, 기타 중심 대학들은 대체로 5∼6년이다. 반면에 단과대학은 3∼4년이며, 고등 전문학교는 2∼3년, 특수 대학들은 4∼5년의 수업 연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특수 대학은 직업교육을 담당하므로 노동과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남북 대학간 교류·협력은 바로 이와 같이 북한의 고등교육 기관이 갖는 차이점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접근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대학이 갖는 특성으로 인해 파생되는 대학 교류의 한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우선 대학 교류의 상대역을 찾기가 어렵다. 특히 북한 대학 당국자들이 재량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대학 교류의 어려움을 더해 준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은 조선노동당에 의해 지도되는 당-국가 사회이다. 이는 대학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총장과 같이 대학 당국자들에게 정치적인 재량권이 없기 때문에 이들과 실질적인 교류 방안을 협의하는 것이 제한되어 있다. 그렇다고 대남 창구인 아·태평화위원회와 협의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대학 교류가 대학 내의 사안이나 학술적인 내용을 두고 벌어지는 교류이므로 보다 전문적인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불필요한 비용이 들어가고 대학 교류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기 쉽다. 둘째, 첫 번째 사항과도 관련이 되지만 북한의 대학 사회에는 우리의 학회와 같이 자발적인 교수나 학자들의 조직이 없다. 북한에서 학자들의 모임을 조직하려면 당연히 당국의 허가를 얻어야만 한다. 따라서 남한의 대학 사회가 갖는 자율성을 북한의 대학에 그대로 적용시켜서 교류를 추진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셋째, 교류를 원하는 북한의 대학과 서신이나 전화, 팩스, 전자우편 등 통신을 이용한 사전 협의가 거의 차단되어 있다. 이러한 까닭에 교류를 원하는 대학은 중간에 이른바 에이전트를 두어 사전 협의를 해야 하고, 따라서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 정확한 의사 소통도 불가능하다. 넷째, 북한 당국은 대학 교류를 순수한 학술적인 차원으로 생각하기보다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특히 교류 분야가 인문사회과학 분야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공계 분야의 경우에는 북한 당국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남북 대학간 교류에는 많은 한계가 놓여 있다. 그러나 북한측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남북 교류를 바라보는 인식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현재의 여건에 맞는 적절한 교류 전략을 설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간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공계열이나 의학계열 등 자연과학에 중점을 두어 교류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특히 최근 북한이 정보기술 분야에 역점을 두고 있는 만큼 이 분야에서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북한의 낙후되어 있는 시설 및 기자재 사정을 고려하여 남한의 대학과 기업이 연계하여 현대적인 시설 및 기자재를 지원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의학 분야의 경우에는 발달된 북한의 고려 의학과 남한의 현대 의학을 결합시킴으로써 학술적으로도 큰 성과를 이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컨대 정치적인 제약을 크게 받지 않으면서도 추진할 수 있는 사업들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국민의 정부가 추진하는 정경분리 원칙에 의해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 활동이 과거보다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남북간 비정치적 분야의 교류·협력을 가능케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사업들은 큰 부담없이 추진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사업들을 통해 어느 정도 신뢰가 조성되고 사업의 효과를 인식하게 되면 그 다음 단계에서 인문학 분야로 사업 범위를 확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인문학 분야 중에서도 정치적인 해석이 크게 작용하지 않는 고대사 연구라든가 강점기 하 일제의 우리 민족 말살 정책 연구와 같이 공감대를 넓게 가질 수 있는 분야에서 남북 대학 교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Ⅴ. 맺음말

위에서 살펴본 대로 현 시점에서 남북 대학간의 광범위한 교류·협력은 많은 제약 하에 있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간의 정치적인 대결 상태가 화해·협력의 상태로 전환하는 이행기에 있지만, 아직도 대학 교류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 그만큼 분단 구조가 강고하게 정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간 교류·협력이 필요하다면 그 방향과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는 있다. 우리가 지금 대학간 교류·협력을 추진할 때 과연 어떤 목표와 비젼을 가지고 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교류·협력 사업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 교류는 일회적인 단발성·전시성 행사로 그쳐서는 안된다. 교육 자체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일진대, 대학 교류는 민족 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남북한 교육, 특히 대학 교육간에는 유사점도 있으나, 차이점도 상당히 크다. 무엇보다도 지금과 같이 남북한간에 정치적인 긴장 관계가 가로 놓여 있는 상황에서 당장 교육 목표나 이념, 원리가 부딪힐 수 있는 분야의 교류를 시행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우리가 현 시점에서 대학 교류를 논의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교육 분야의 교류·협력을 통한 민족적 정체성과 문화적 동질성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서 바람직한 대학 교류를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먼저 남북한 교육의 다양성과 이질성, 그리고 서로간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그것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한 쪽의 교육 원리와 내용이 나름대로의 역사적 배경과 체제적 논리를 가지고 변화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해해야만 비로소 교류의 최소한의 조건이 갖추어진다고 할 수 있다.

둘째, 한꺼번에 모든 분야를 다루지 말고, 점진적인 교류와 협력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보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교류와 협력이 가능한 분야부터 점진적으로 교류의 폭을 넓혀 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의 교육이 갖는 동질성과 공통점을 찾아내고 이를 발굴해 상호간의 화합과 통합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치이념이나 체제와는 관련이 없는 이과, 공과, 의과 등 자연과학 분야의 교류·협력을 먼저 추진하고 나서 역사학, 언어학 및 국문학, 전통문화 및 관습과 관련된 인문학 분야 등의 교류를 점진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하겠다.

셋째, 남북한의 교육이 서로 이질성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교육의 보편적인 가치를 구현하는 방향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세계사적 전환기에 남과 북이 평화롭게 번영할 수 있으려면 세계적 흐름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고, 궁극적으로 이에 기초하여 통합 교육의 목표와 이념을 추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남북한의 고등교육은 모두 전문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동시에 각 사회 분야의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기능을 지닌다. 그러나 고등교육이 미래 지식 정보 사회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다양한 형태의 대학을 육성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교육의 질적 향상을 기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남북한의 대학 교류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분단 반세기 동안의 적대 관계를 생각한다면 자유로운 교류는 아직도 미래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조금씩 남북 관계의 상황에 맞추어서 대학들이 교류를 추진해 나간다면 궁극적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남북 공히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의 체제 속성상 급진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우며, 변화하지 않는다고 실망하는 것은 오히려 북한 정권의 의도에 순응하는 것이 된다. 어렵지만 끈기있게 지속하는 자세야말로 대학 교류를 개선시키고, 나아가서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학인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재규(전 통일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