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호 : 이공계 교육에 나라의 운명 달려있다 - 김시중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위 페이지는 Safari 환경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다른 브라우저 또는 PDF다운로드메뉴를 이용해주세요.

창 닫기

Ⅰ. 서론


“이스라엘 산업의 경쟁력은 학교의 과학교육에서 나옵니다.” 올해 연초 방한한 이스라엘 와이즈만 국립연구소의 과학교육 본부장인 에이브러햄 아카비 박사가 한 말이다. 와이즈만 연구소는 에너지·정보통신·생명과학·재료공학 등 기초과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이같은 연구소의 과학교육본부장이 우리나라에 초청된 이유는 특이하게도 이 연구소가 이스라엘의 초·중등학교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과학교과서를 만들고 있고, 과학교육을 위한 연구에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1960년말부터 200여 명의 연구원들이 과학교육 연구에만 매달려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과학의 중요성과 재미를 일깨워주는 일이 기초과학의 연구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아카비 박사는 설명한다.

이 연구소에서는 과학교과서뿐만 아니라 과학게임, 실험키트 등 과학교육에 필요한 기자재도 개발하고 있으며, 연구원들이 학생들과 결연을 맺고 수학·과학을 지도하고 실험식 교육에서부터 지적인 길잡이 역할까지 도제식 교육을 해 주고 있다. 실험식 교육은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이공계 출신들이 지도하는데, 학생들이 학교와 기업체를 오가며 현장실험을 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이 짜여져 있다고 했다.

비슷한 시간, 대한상공회의소 박용성 회장은 “우리나라 대학들은 반품은 차치하고, A/S도 안되는 최악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해마다 대졸 신입사원을 뽑고 난 후 기업체에서 내뱉는 한탄이라고 하며, 우리 기업들은 신입사원을 그대로 산업현장에 투입하지 못하고 모두 재교육시킨 후 배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이공계 위기’는 젊은이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초·중등 과학교육의 부재와 이공계 대학의 현장감을 외면한 커리큘럼에도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먼저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해 짚어본 후, 이공계 교육의 위기 해소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Ⅱ. 젊은이들의 이공계 기피현황과 대책


우리나라는 지난 40여 년간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국가 중의 하나이다. 지난 1962년부터 1998년까지의 누적적인 총연구개발 투자는 1,000억 달러(경상가격기준 합계)에 달하며, 2002년까지 1,20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우리의 경제능력과 자원을 고려할 때 이러한 투입규모는 대단한 것이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과학기술 발전에 자원을 집중시켰던 의지와 노력의 결과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지난 40여 년간 수많은 산업을 발전시키는 능력도 보여주었다. 1960년대 이후 섬유, 가전,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조선 등 주요 산업을 발전시켰고, DRAM, 핸드폰, LCD, CDMA 등 주요 첨단기술개발에 성공함으로써, 30여 년 만에 다기능화되고 복합적인 산업구조도 갖게 되었다. 짧은 기간 동안에 첨단산업에 전통산업을 복합한 중층구조로 바람직한 산업을 육성하였고,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하여 세계 10위권의 경제자립을 이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과학기술 혁신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기초과학이나 원천기술에 대한 지식의 축적이나 노하우는 빈약했을 뿐만 아니라, 도입된 첨단과학기술을 심도있게 이론화하여 한국적 기술로 승화시키려는 노력도 미흡했었다는 지적은 수긍되어야 한다. 지난 40여 년간 기술도입액이 182억 달러나 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또한 항공우주, 원자력과 같은 거대과학(Big Science)에 관한 연구개발은 부족했다는 과학기술계의 평가도 받아들여야 하고 이와 같은 부분의 보완은 우리의 성숙된 경제나 과학기술력을 바탕으로 21세기에 해결해 나가야 할 우리의 과학기술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에는 과학기술을 경외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깃들어 왔다. 이 같은 풍조는 IMF사태 때 기업들이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아래 과학기술관련 연구기관을 제일 먼저 폐쇄하고 과학기술자를 제일 먼저 쫓아내는 망국적인 풍토를 야기시켰다. 과학기술을 숭상하는 국가와 민족만이 지구촌에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21세기를 맞이해야 할 문턱에서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비극이었다.

이공계 기피현상을 단순한 젊은이들의 3D 현상, 또는 안락하고 편안함만을 추구하려는 시대적인 현상으로만 파악하거나 간과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21세기 지식기반사회는 과학기술 없이는 지탱될 수 없는 사회의 구조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공계 기피현상을 타개하지 않고서는 우리사회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공계 기피를 타개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과학기술자들의 몫이 줄어들거나 과학기술자들의 집단이기주의나 과학기술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21세기의 우리나라와 사회를 위해서 과학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이 분명하게 전제되어야만 한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는 기술이 경제에 예속되었었던 과거 산업사회와는 달리 기술경영이 산업을 이끌고 가는 사회가 될 것이다. ‘21세기의 경제사회적 구조는 과학기술이 이끌어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은 하나의 명제이다. 따라서 국가사회발전을 위한 이공계 출신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머리 좋은 인재들이 부족해진다면 우리사회의 발전은 그만큼 뒤쳐질 것이 명백하다.

더구나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이끌고 갈 과학기술활동의 주체인 과학기술인력 양성은 정부의 근시안적인 정책 탓으로 수급 조정에 혼란을 초래하여 왔는데, 거기에 최근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보태지면 향후 10~15년 내 과학기술인력의 공동화 현상을 유발시킬 우려까지 낳게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사회의 큰 문제로 지적되는 소위 ‘이공계 기피’현상은 심도있게 분석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과학기술분야 인재의 양성은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핵심 정책으로 부각되어야 하고 정부는 물론 산업계, 학계에서 문제해결에 전략적으로 접근하여야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 방향을 정확히 예측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수립하여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지속적인 국가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


1. ‘이공계 기피’ 현황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한 한 워크숍에서 지적된 이공계 기피현황을 보면 고교생들의 이공계 진학률이 1997년의 50%에서 2000년도에는 26%로 급감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또한 2002년도 우리나라의 고급두뇌의 해외유출이 1만 명을 상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두뇌 유출지수는 4.11인데 미국은 8.55, 일본은 6.83, 대만은 5.09, 중국은 4.88이었다. 두뇌유출지수(brain drain index)란 전원이 국내에 남겠다고 희망할 경우를 10점 만점으로 한 수치를 말한다.

대입 수학능력시험성적의 1등급 학생의 이공계 진학비율도 1999년도 27.6%에서 2001년도에는 19.5%로 감소되었다. 또 다른 보고서는 대입수학능력시험에서 고등학생의 자연계 지원율은 1997년도 43.2%로 35만7천명이던 것이 2002년도에는 26.9%로 19만9천명으로 크게 줄어들었으며, 이에 비해 인문사회계와 예체능계는 크게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일선 고교에서는 자연계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문과반과 이과반 구성비의 균형이 깨지고 문과반의 수가 급격히 증가한다는 것이며, 자연계 지원학생들 중에서도 우수한 학생들은 취업전망이 좋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의과대로 진학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서울대 공대와 자연대의 2002년도 합격자 등록률이 각각 81.7%와 81.9%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우수 과학인력을 조기에 양성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된 과학고에서도 의과계열에 대한 이상과열 조짐이 확산되고 있다. 2002년 서울대 박사과정 모집에서도 모집정원 77명에 50명만 지원하는 미달사태가 빚어졌으며, 한국과학기술원의 석사취득 후 박사과정 진학률도 1998년의 76.4%에서 지난해에는 64.9%로 크게 내려갔다.


2. 이공계 기피현상의 원인 분석


이공계 기피현상은 ’90년대 중반에 나타난 3D현상으로 시작되어 IMF사태 등 경제위기가 시작된 ’98학년도부터 가시화되었다. 그 원인은 복합적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으나, 가장 큰 원인은 과학기술자의 사회적인 예우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판단된다.

’7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이공계 출신에 대한 사회적 대우는 양호하였다. ’70년대 ‘기술입국’ 시대에는 경제성장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주목받아왔던 이공계 인력과 관련 학문 분야는 한국사회의 급격하게 변화하는 풍조와 맞물리면서 서서히 소외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DJ정부 때의 하향평준화 정책은 남보다 더 많은 노력과 열정을 다해 공부해온 지식인들에게 자괴감에 빠지거나 소외감마저 들게 했다. 또한 이공계 졸업생들에 대한 기업의 보상체계가 왜곡되어 상대적으로 소득이 하락하고 사회적 지위나 인식이 낮아진 것도 원인 중의 하나이다.

한 연구보고서는 이공계 붕괴 현상의 가장 직접적인 동기는 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연구기관과 연구 인력이 제일 먼저 축소되거나 감원되었던 충격과 파장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80년대 이후 우리사회에서 팽배하기 시작한 과학기술가치와 그 인력에 대한 보상 체제의 부족과 외면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인문·사회계열 출신자들을 우대하는 성향이 강하고, 따라서 사회의 중심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 중 이공계 출신이 매우 적다. 즉, 사회 전반에 걸쳐 이공계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가 부족한 상황이다. 예를 들어 기술고시 선발인력은 행정고시의 6분의 1 밖에 안 되고, 이공계의 대졸초임은 상경계보다 낮고, 30대 상장기업의 최고경영자 83명 중 이공계 출신은 19명으로 22.8%에 지나지 않는다. 즉 수요와 대우 모두 상대적으로 열악한 위기에 있다. 과학기술은 기업하는 사람들의 부를 쌓아주는 수단 정도로만 생각하는 기업풍토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사회적 풍조는 대학진학을 앞둔 청소년들에게 이공계를 외면하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한 연구보고서는 고교생들이 과학기술분야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수학·과학 등 어려운 과목에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되는데다가 과목 자체의 난이도가 매우 높아 인문사회과목에 같은 시간을 투입하는 것에 비해 수능 점수를 좋게 받기 어렵다고 입시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연계 대학에 진학했을 경우, 공부내용이 매우 어려워 학점을 쉽게 따기가 곤란하고 학업수행 자체가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점은 고교를 다니는 청소년들이 이렇게 어려운 공부를 하고 졸업을 하였을 경우에, 과학기술자들의 처우는 비교적 쉬운 분야를 공부한 사람들에 비하여 특별한 보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제도적 장치도 확립되어 있지 못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3. 정부의 대책과 평가


국가과학기술위원회(위원장 대통령)는 지난해 8월 20일 이공계 기피현상 타개책의 일환으로 ‘이공계 전공자 공직진출 확대 방안’을 의결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정부는 2008년까지 단계적으로 새로 뽑는 5급(사무관)공무원의 40% 정도를 이공계 출신으로 충원하게 된다. 중앙부처와 광역시·도 본부도 연차적으로 2008년까지 4급 이상 자리를 계급별로 30%이상씩 이공계 출신으로 채워야 한다. 그 중 상당수는 고시가 아닌 특채형식으로 이뤄진다.

이 방안에 따르면 5급의 이공계 출신 신규채용은 고시형태의 필답고사의 비율을 계속 줄이는 대신, 박사나 기업·연구소에 근무하는 전문가를 특채할 계획이다. 기존 기술고시도 행정고시로 통합한다. 고위 공무원의 행정직과 기술직 구분을 없애 이공계 출신이 진입할 수 있는 길을 넓혔다. 3급(부이사관)이상 공무원의 경우 부이사관으로 통합된다. 행정서기관과 기술서기관으로 단순화되는 4급(서기관)의 자리 대부분도 행정직과 기술직 중 누구나 갈 수 있는 복수직으로 바뀐다. 당초 계획은 4급도 직급 구분을 없애려 했었다. 이외에 기술직에 대한 분류를 8개 직군 38개 세부전공별 직렬에서 5개 직군 15개 직렬로 바뀐다. 2005년부터 행정고시와 기술고시가 통합 운영된다. 그러나 뽑는 직군은 지금과 특별히 변화되지 않는다. 즉 기술고시를 행정고시 안에 넣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행정고시는 일반행정직, 재경직 등으로, 기술직은 기계직, 토목직 등으로 구분해 뽑았는데 이를 행정고시 안에 모두 넣겠다는 것이다. 기술직의 경우, 앞으로는 필답고사로 뽑는 인원을 연차적으로 줄여 나갈 계획이다. 대신 기술사, 박사 등 우수과학기술 인력을 공직으로 끌어들이게 된다. 이를 위해 경력인정 등의 범위를 크게 조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공계 출신의 공직진출 확대는 ‘상징적인 정책’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우려도 있다. 우선 기득권 세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문사회계 출신들이 긍정적으로 수용하겠느냐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또한 수용한다 하더라도 학연·지연 등으로 굳건한 인맥을 쌓아왔고 또한 그것을 고집할 것이 분명한 ‘공직’이라는 사회에서 이공계 출신이 뿌리를 내리기에는 한 두 세대 이상이 걸릴 것이 분명한데, ‘과학기술이 주도해 나갈 21세기’라는 패러다임이 그것을 기다려 주겠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이공계 출신의 공직 진출 확대방안에는 그것을 시행하지 않으면 안 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예컨대 ‘정부정책 중 과학기술관련 정책수립과 집행에는 이공계 출신이 책임자가 되어야만 가능하다’라고 하는 내용의 특별조치법을 국회가 제정한다거나 하는 것이다.

이공계의 공직진출이 활성화되고, 또 공직에 진출한 이공계 출신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실천적이고 구체화된 공직사회의 인적구조 개편 로드맵(Road Map)이 그려져야 한다.

정부는 이공계 활성화를 위한 또 다른 대책으로 병역혜택의 규모를 현재의 2배로 늘리고 전문연구요원의 복무기간을 지난해 9월, 5년에서 4년으로 단축한데 이어 앞으로는 4년에서 3년으로 더 단축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방안 역시 근시안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무엇을 희망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 탁상행정논리라는 지적이다. 예컨대 프랑스는 우리나라의 KAIST 같은 대학을 육군사관학교처럼 운영하고 있다. 국가적인 행사의 퍼레이드를 벌일 때 사관생도 대열보다 선두에 서서 행진하며, 일정기간의 전문연구기간을 군복무로 인정해 준다. 한마디로 프랑스의 이공계 우수인재는 ‘국가를 보위할 간성’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고 사관생도보다 더 예우를 받는다. 우리 이공계 청소년들도 이 같은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병역의 의무를 마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국군체육부대가 있듯이 ‘국군과학기술부대’를 창설하여 군사과학 뿐만 아니라 군·민 겸용 기술개발에 주력하는 것도 이공계 기피의 해소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과학기술중심사회의 구축’이라는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3대 목표와 10대 중점 추진과제, 그리고 80개에 달하는 차세대 성장 동력이 될 연구개발과제를 내놓고 있다. 장미빛 비전과 국가발전 전망을 제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같은 비전 앞에서 무슨 이공계 기피현상이 나타날 수 있겠느냐는 식이다. 과학기술중심사회의 구축방안이 곧 이공계 활성화로 연계될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여 있다.

과학기술인의 한 사람으로써 박수치고 경하해야 할 정부의 국정과제 중의 하나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그 방안을 구체화시켜줄, 실질적으로 추진시켜줄 법(法)이 없다는 것이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에서 입법되지 않은 행정부의 한 가지 정책을 밀고 나갈 수 있는 묘안(?)이라도 있다는 것인가 되묻고 싶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과학기술진흥확대회의를 만들어 그 자리에서 보고하고 집행하는 형식을 갖추어야 했던 과학기술정책이 오늘의 국정현장에서 긍정적인 평가와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가 궁금하다.


Ⅲ. 이공계 교육의 위기해소 방안


정부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인적자원종합개발계획’을 수립, 추진해 나가고 있다. 그 내용은 차세대 국가성장을 이끌어 나갈 핵심인력을 양성하고 대학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공계를 활성화시킨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개혁되어야 할 것은 수능으로 평가하는 대학입시제도이다. 암기위주의 필기시험 탓으로 창의성 평가는 외면되고 있다. 높은 수능 점수만 얻으려고 진로와는 무관한 학과목을 선택, 입학부터 해 놓고 보는 것이 현행 대입제도이다. 오죽하면 서울대 물리학과는 신입생들에게 고교물리를 다시 가르치고 있겠는가. 대학의 특성에 맞는 창의성·독창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학 중심의 입시제도로 개편되어야만 한다. 이공계 교육의 위기감은 여기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입학부터 잘못하였으니 휴학생이 늘어날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단순히 ‘공대 다니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4년제 대학 이공계생의 30~40%가 휴학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내놓은 ‘4년제 대학의 휴학 및 제적생 현황’에 따르면 계열별 휴학생 비율은 이공계가 38.8%, 사회 31.2%, 이학 30.6%, 인문 27.2%, 예체능 25.6%, 사범 17.4%, 의약 8.1%순이었다. 공대생의 경우, 10명중 4명이 휴학하고 있으며 이학계열은 10명 중 3명꼴이나 휴학중이다. 이들이 대학을 그만두는 이유는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학업을 계속할 의지가 부족해서’가 대부분이다. 성적이 부진해서 제적된 학생 비율도 이학계열이 4.5%, 공학계열 3.9%나 되었다. 모두 다른 계열보다 높은 편이었다.

둘째는 대학의 커리큘럼이 기업체가 필요로 하는 이공계 인재를 양성해 내는 쪽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한 해에 쏟아지는 이공계 대졸 실업자가 2만6천명씩이나 되어도 기업체에서는 마땅한 기술인력을 구하지 못해서 외국 인력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기업의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는 대학교육의 커리큘럼 탓이다.

산업자원부가 내놓은 ‘2006년의 업종별 산업기술인력의 수급전망’을 보면 전자·반도체부분 석·박사는 5,640명이나 부족하고, 기계·자동차는 1,980명, 철강 350명, 섬유 170명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기계·자동차 부문은 학사마저 1만여 명이 부족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산·학 연계형 커리큘럼이 마련되고 대학과 기업이 ‘이공계 인력 수급을 위한 협의회’라도 만들어 기술인력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켜 나가야 한다. 특히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키워나가겠다는 미래형 자동차·지능형 로봇 등 10개 분야의 100여 개 제품과 관련된 전공과정이 신설되어야 한다. 대학은 교수의 일정 수를 산업체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채용할 필요도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산하의 중앙고용정보원은 ‘직업전망보고서’를 발표하고 384개 대표적인 직업 가운데 이공계 관련 48개 직업의 일자리가 향후 5년 동안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일자리가 늘어나는 이공계 관련 직업은 전자공학기술자, 통신공학기술자, 생물학연구원, 컴퓨터공학기술자, IT컨설턴트, 기계공학기술자, 자연과학연구원, 항공기조종사, 변리사 순이었다. 이공계 대학들은 이와 같은 자료를 참고로 해서 대학생들을 지도하는 방법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셋째는 이공계 대학의 장학금, 연구비, 국비 유학 지원이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등록금 지원 외에도 생활비 등의 추가지원도 필요하다. 이공계 대학에서는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를 토대로 한 교육여건 개선에 주력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이공계 전공자에 대한 사회·경제적인 처우가 근본적으로 개선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Ⅳ. 제 언


‘이공계 기피’라는 사회적인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고교생 자녀를 둔 학부모와 이공계 석·박사 과정을 포기하려는 대학원생들의 마음을 바꾸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에 글쓴이는 ‘이공계를 권하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발상의 전환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는, 앞으로 2~3년 내에 우리나라는 이공계 인재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의 이공계 기피 추세대로라면 향후 10년 내에 이공계 대학의 강단은 텅비게 될 것이고, 국내 기업들은 ’60~

’70년대 해외과학자를 유치해 왔듯이 과학기술자 모셔가기에 혈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대입수학능력평가시험에서 고교생들의 자연계 지원율이 엄청나게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지난 5년 동안 자연계 지원자수가 어림잡아서 약 20만 명이나 줄어들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 해 동안에 4만 명씩 줄어들은 셈이다. 따라서 이런 추세라면 향후 2~3년 내에 이공계 인력 부족현상이 나타날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과학기술부는 오는 2005년에는 과학기술 두뇌가 18만명이나 부족해져서 국가과학기술 연구개발에 빨간 불이 켜질 것이라고 한탄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이공계를 지원한 청소년들은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선택적인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상대적인 경쟁자가 적어서 좋은 선배와 스승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것은 곧 소위 웰빙(well being)을 보장받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기술은 그 학문의 특수성 탓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도제(徒弟)시스템으로 영원히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의 이공계대 교수들이 졸업생의 취업률 제고를 위한 커리큘럼을 만드는 등 성공적인 학생유치 방안을 만들어 내느라고 몸부림을 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둘째는 국가의 과학기술 진흥이나 투자는 지속적으로 증대될 것이므로 조기퇴출이나 일거리 없는 노후를 걱정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04년을 가리키고 있는 인류사의 시계는, 우리가 살아야 할 21세기는 ‘과학기술의 힘이 한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선도하는 시대’임을 확신시켜주고 있다. 아울러 과학기술은 향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의 근본적인 변혁을 초래할 것이며, 인류의 미래를 풍요롭게 해 줄 것이라는 시사가 우리 주변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과학기술 중심사회의 구축’이라는 ‘참여정부’의 국정과제도 이와 같은 시대적·지정학적인 조류에 발맞춘 것이라고 하겠다. 과학기술 중심사회란, 한마디로 과학기술정책이 모든 국가정책을 우선하며, 과학기술인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공계를 지원한 자녀들은 자신들이 노력하고 고생한 것보다 더 큰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 확실하다. 지난 40여 년간 우리나라의 총 연구개발투자는 1,200억 달러, 약 150조 원이었고, 향후에는 필연적으로 연간 3~5%씩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현재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도덕적 해이는 무너지고,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가 되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정치개혁·경제개편·하향평준화 사회 등 논담(論談)에만 몰두하고 있고,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2030세대의 가치관은 어렵고 까다로운 일자리는 기피하면서 편하고 수입 많은 직업만을 흠모하는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 ‘21세기에는 과학기술이 한 국가와 한 민족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는 회자(膾炙)가 무색할 정도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인터넷 시대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투명성과 정직성을 구현해 줄 것이고 IT, BT에서 퓨전(fusion)에 이르는 새로운 과학기술 패러다임은 새로운 경제발전의 주축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공계 출신은 풍요를 가꾸는 역군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21세기는 정치와 경제가 이끌어가던 사회와는 달리, 과학기술이 경제와 정치를 이끌어 가게 될 것이므로, 전문지식을 갖춘 이공계 출신들이 최고경영자(CEO)로 성공할 것”이라고 말한 암벡스 벤처그룹 이종문 회장의 KAIST 강연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한 순간 현명하게 선택한 이공계는 밝은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김시중(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