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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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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이 26년만에 영글게 되는 것 같다.
작성자 강영선 작성일 2008-01-09
전자우편 ys1053@hanmail.net 조회수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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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재정과 근무
나는 1962년 5월 18일 문교부 학교관리국 교육시설과에 첫발을 디딘 이후 기획관리실과 보통교육국 교육행정과, 감사담당관실, 총무과 인사계장, 서울대학교 경리과장, 시설국 관리과장으로 전전하면서 한 자리에서 짧게는 2년 이상, 길게는 4년이나 장기근무를 하였는데 1981년 3월 14일 교직국 연수과장으로 간지 불과 5개월만인 1981년 8월 18일 대학국 대학재정과장으로 발령이 났었다.
내가 그렇게 겨우 5개월만에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은 당시 정태수 차관님께서 연수과 보다는 대학재정과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셨고, 차관님이나 대학국장님께서 나에 대해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셨기 때문에 나를 찍어 그 자리에 앉힌 것이라고 생각되어 지금도 그 분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기획관리실에 오래 근무하였었고, 감사업무도 여러 해 보아왔기 때문에 대학재정과의 업무를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속속들이 깊이 알지는 못하였기 때문에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차관님과 대학국장님의 기대를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처음에는 매우 당황하였으며 책임감의 중압감 때문에 밤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였다.
대학재정과에는 김홍원 사무관님 같은 유능한 사무관을 비릇하여 우수한 직원들이 모여 있었고, 내 전임자인 이보령과장님이 많은 일을 해 놓아서 내가 할 일은 별로 없는 듯하였다.
그러나 내가 대학재정과에 왔으면 무엇인가 내 할 일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문교부라는 곳은 각 급 학교를 감시하고, 통제하고, 군림하는 곳이 아니고, 모든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모든 교육자들이 자유롭게 학생들을 잘 가르치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는 도우미역할을 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기관이라는데 인식을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선 학교에서 안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먼저 조사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지금까지 문교부에서 하는 일에 잘못은 없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급선무였다.

2. 사립대학교 문제 해결
그래서 나는 각 대학의 사무처장을 만나거나 통화를 할 때마다 문교부에서 도와줄 것이 무엇인가를 여쭈어 보았다. 그랬더니 이화여대 이병림 사무처장께서는 국공립학교에서 직영하는 구내식당에 대해서는 아무런 세금도 부과하지 않는데 사립학교에서 직영하는 식당에 대해서는 부가가치세를 내야 한다고 하시고, 백봉호 한양대학교 사무처장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시면서 부가가치세 500만원이나 납부하셨다는 말씀도 하셨다. 또 원광대학교 김인용 총무처장님께 여쭈어 보니 국공립학교에서 교지 확장을 위하여 농지를 지목변경 하더라도 아무런 부담이 없지만 사립학교에서 농지를 지목변경하려면 평당 3천 원 이상의 농지조성비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부산여자대학교 노재청 사무처장께서는 사립학교에서 교지를 형질변경 할 때마다 1평당 2만원의 지하철공채를 매입하여야 하는데 국공립학교에는 지하철공채를 매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많은 사립대학은 물론 국공립대학에서도 공통으로 느끼는 것은 학교부지내의 공터에 교사를 증축하고자 하더라도 교지 중 일부가 공원용지로 혹은 개발제한국역으로 묶여 있어 증축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다가 농지조성비문제와 부산의 지하철공채 그리고 사립학교에서 직영하는 구내식당에 대한 부가가치세 등 국공립과 차별을 받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그리고 조선일보의 문교부 출입 기자를 10일 간격으로 개별적으로 살짝 불러 한 신문사에 한 가지 문제씩 이 제도에 대한 모순을 알려주니 이 기자들은 다른 기자도 이 사실을 아느냐고 물어 당신에게만 주는 자료라고 하여 그 기자로 하여금 신문 3면의 특종기사로 보도하게 하였다. 이 때 협조를 해주신 기자는 고학용 기자, 하금열 기자, 송석형 기자, 오홍근 기자님 등이었다. 이렇게 대서특필 해놓고, 이어서 해당부처에 공문을 내니 다른 부처에서도 주요 야당지의 3면 톱으로 보도된 문제를 소홀히 다루지 못하고, 모두 내 주장대로 관련 규정을 개정하여 1983년도 봄까지 모두 해결을 보았다. 그랬더니 이화여대 사무처장님께서는 고맙다며 나에게 점심을 사주셨는데 김홍원 사무관은 이화여대 사무처장으로부터 점심식사 대접을 받은 사람은 내가 역사상 최초라면서 나를 해결사라고 부르기까지 하였고, 한국사학재단연합회 사무국장인 원길린 선배님은 농지조성비문제를 해결하려고 보통교육국에서 10년 동안이나 투쟁을 하였으나 해결을 해지 못한 것을 내가 해결하였다며 고마워하면서 허선간 한국사학재단연합회 회장에게 보고하여 허 회장님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전화를 받기도 하였다.
또 한 가지 남은 학교 부지에 대한 건축제한은 전국의 모든 대학에 해당되는 문제이므로 언론기관만을 이용해서는 해결될 성질이 아니라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의 박승규 비서관님을 찾아가 이를 해결해주시도록 간청을 하였다.
내가 문교부 감사담당관실에 있을 때나 총무과 인사계장으로 있을 때 청탁이나 압력, 금전공세에 흔들리지 않고, 원리원칙대로만 처리를 하다 보니 칭송도 받았지만 원망도 많이 듣고, 나를 모략하는 투서도 많았으나 청와대 민정반에서 나에 대한 뒷조사도 여러 차례 하였으나 모두가 사실무근으로 판명되자 박승규 비서관님께서는 나를 아주 좋아하셨고, 나도 그 분이 훌륭하신 것을 알고 그 분에게 부탁을 드리니 그 분께서는 즉각 나를 도와주시겠다며 건설부에 지시를 내려 내가 각 학교에서 건축제한을 받고 있는 학교용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여 건설부에 해제신청을 하고 건설부 허재영 국장님을 찾아가 설명을 들였는데 건설부 허재영 국장님께서도 나의 주장을 옳게 받아드려 적극적으로 조사를 하고, 현지에 나가 조사도 하여 이 문제도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대부분 요구대로 해결을 보았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국무총리실 기획조정실에서는 도립병원이 운영이 되지 않으니 도립병원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에서 병원경영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신영수박사에게 연구용역을 주었는데 그 결과는 국립대학교 부속병원과 도립병원을 통합하여 지방공사화 하고, 병원장은 보사부장관이 임명하고, 보사부의 지도감독을 받도록 하는 방안이 연구결과로 보고되어 국무총리 재가를 받아 이를 조속히 시행하도록 하는 국무총리지시각서가 내려졌다. 그래서 난리가 났었다. 나는 아무리 국무총리 지시각서라 하더라도 그대로 국립대학교부속병원을 빼앗길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국립대학교 부속병원은 진료를 목적으로 하는 병원이 아니고, 교육병원이고, 연구병원이고, 실습병원이라는 이론과 이러한 방안은 교육경시의 풍조에서 발상한 것이고,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 있는 제도라며 맹렬한 공격적인 반박공문을 총리실에 보냈더니 총리실에서는 내가 국무총리를 모욕하였다며 나를 징계조치하고 인사조치하라는 내용의 국무총리 지시 공문이 결재중이라는 말을 국무총리실의 모 사무관으로부터 들었다. 그래서 나는 즉각 나의 사직원을 써서 총리실에 찾아가 󰡒나는 문교부를 지키는 파수병입니다. 나는 문교부를 지키다가 적탄에 맞아 쓰러질지 모르지만 나는 순직자로 기록될 것입니다.󰡓 하고 사직원을 던지며 큰 소리치고 왔는데 마침 1982년 1월 3일 국무총리가 바뀌어 김상협 전 문교부장관이 국무총리가 되셨는데 1월 5일 나를 징계조치하고, 인사조치하라는 공문이 결재를 올리자 국무총리께서는 뭐 이런 것을 전화로 하지 공문까지 내느냐며 결재를 하시지 않아 나를 징계하고 인사조치 하려던 계획이 깨지자 제2조정관이라는 분이 직접 정태수 차관님을 찾아와 나를 인사조치하라고 하였으나 정 차관님이 이에 불응하자 청와대 민정비서실의 어느 비서관에게 협조를 부탁하니 청와대 민정비서실의 비서관 한 분이 또 차관님께 찾아와 나의 인사조치하라고 하였으나 정 차관님이 또 거부하자 그 분이 문교부 권숙정 기획관리실장에게 나를 혼내주라 하고 갔다. 그래서 기획관리실장이 나를 부르더니 호통을 치기에 나는 분해서 내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생각도 없어 나는 실장님에게 대들었다.󰡒실장님 실장님은 도대체 어느 기관 기획관리실장이십니까? 만약 문교부 기획관리실장님이시라면 나에게 보사부에 빼앗길 번한 대학병원을 지키느라 수고했다. 잘했다며 칭찬을 하실 것인데 나더러 무슨 일을 그따위로 하느냐고 호통을 치시니 그래 대학병원을 보사부로 빼앗기더라도 얌전하게 있으란 말입니까?󰡓 하고 언성을 높이니 그 때서야 실장님도 무안했던지󰡒아니 나는 강 과장이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부드럽게 할 수 없었는지 하는 것이야?󰡓 하시며 말씀이 부드러워졌기에 나는 󰡒일은 급하고 다른 방법은 없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하고 돌아왔는데 그 뒤 국무총리께서 주재하시는 국무회의에 대학병원문제가 상정되었는데 장관님 대신 내가 정 차관님을 모시고 갔는데 김상협 국무총리께서는 그 일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국무회의에서 처리하기 전에 별도 협의를 하자며 국무회의 의결을 보류하고, 국무회의 뒤에 보사부장관과 문교부차관 그리고 내무부장관과 서울시장만을 따로 모아 대학병원 문제를 논의하였는데 정태수 차관님과 보사부장관간에 논쟁이 벌어졌지만 국무총리께서 문교부 의견에 타당성이 있다고 결론을 내려 일단락되었으나 국무총리실 기획조정실 제2조정관께서는 나에 대한 분함을 참지 못해 계속하여 청와대 민정반으로 하여금 나의 뒷조사를 하게 하여 나는 도저히 불안감 때문에 견디기 어려웠고, 이미 대학병원도 지켰고, 농지조성비, 지하철공채, 구내식당 부가가치세, 건축규제문제등도 해결을 보았기에 나는 미련 없이 대학재정과를 떠나려고 1982년 3월 17일 아침 일찍 차관님을 찾아뵙고, 나를 다른 자리로 옮겨달라고 간곡히 말씀드리니 차관님께서도 총리실과 민정비서실로부터 몇 차례 나를 인사조치하라는 것을 완강하게 거절하였는데 계속해서 괴롭힌다니 잠시 자리를 비키는 것도 좋겠다며 허락을 하셨다. 그래서 차관님께서는 곽병광 총무과장에게 나의 전보를 지시하시니 총무과장은 대학국장에게 찾아와 내 후임은 누가 좋겠느냐고 상의를 드리니 김찬재 국장님은 깜짝 놀라시며 나를 불러 내가 자리를 바꿔달라고 하였느냐고 물으시기에 사실 이야기를 드리니 국장님께서는 󰡒청와데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이 손재석 교수로 바뀌었고, 총리실 기획조정관도 동훈 교수로 바뀌었는데 동훈 교수도 잘 알지만 손재석교육문화 수석비서관은 서울대학교 다닐 때 은사였기에 잘 아는 분이라 강 과장 문제는 내가 그분들 찾아 해결 할 테니 나하고 같이 일 합시다.󰡓 하시기에 나도 그렇다면 그대로 있겠습니다. 하고 대답했고 나는 다시 차관님을 뵙고 그대로 있겠다고 말씀드렸다.
김찬재 국장님께서는 다음날 손제석 교육문화수석비서관님과 동훈 기획조정관님을 찾아뵙고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도록 부탁드리고 오셨다. 그래서인지 그 뒤로는 나를 미행하거나 내 뒷조사를 당하는 일은 없었다.

3. 대학교육협의회 창설
나는 대학재정과장으로 보직 받은 지 100일 동안 문교부에서 대학에 대해 하는 일이 잘하는 일인지 회의를 같게 되었고, 그렇다면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생각나는 것을 윗분에게 보고 드리고 이를 시행하는 것이 문교부가 살고 대학 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윗분에게 보고를 들여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직속상관인 김찬재 대학국장님께 먼저 보고를 들여야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되지만 내 생각은 대학국을 없애야 된다는 것이라 국장님께는 감히 보고를 드릴 수 없었다. 그래서 대학재정과장이 된지 101일이 되는 1981년 12월 7일 정태수 차관님을 찾아뵙고,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그동안 제가 대학재정과에 있어보니 대학재정과에서는 사립대학에 대하여 한 푼의 지원도 하지 못하면서 예산서를 제출하라 결산서를 제출하라 지시하고, 예산서와 결산서를 서류검토 하여 시시콜콜한 문제를 따지기도 하고, 사립대학에서 재산 처분을 하거나 기채를 하고자 할 때 이를 검토하여 승인해 주는 일이 전부이고, 대학학무과에서는 대학 입시제도와 수강과목 등 간섭할 필요가 없는 일에나 물고 늘어지고, 대학행정과에서는 학과의 설폐, 입학정원 조정 등을 가지고 권리를 행사하고자 하는데 이는 헌법에 보장된 대학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반드시 대학은 자율성이 보장 받아야 되는데 대학에 따라서는 자율권을 행사할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한 대학도 있고 그렇다고 그런 학교를 빼고 자율성을 허용하기기도 어려우니 대학이 연합하여 대학교육협의회 같은 기관을 만들고, 이 기관에서 단체자치를 하며 문교부에서는 현재 대학국에서 하는 행위를 문교부에서는 손을 떼고 대학교육협의회에 이양하여 대학교육협의에서 행사하는 한편 그 대학교육협의회에 법인격을 부여하여 증권감독원이나 보험감독원 같은 역할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대학의 자율성도 보장해주면서 대학에 정부의 의사를 전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말씀드리니 차관님께서도 󰡒나도 평소에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당연히 그렇게 돼야지󰡓 하시며 그렇게 추진하자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이 성사되면 결국 대학국을 폐지하게 되어 나로서는 말 할 수 없고, 또 이 작업을 대학국에서 하더라도 대학국 주무과인 대학행정과에서 할 일이지 대학재정과에 할 수 있는 아닙니다.󰡓 하니 󰡒그 것은 그래 그러나 반드시 이 일은 해야 되니 기회를 보아 여건을 조성해야 돼 그 일은 내가 하지󰡓 하신다.
그리고 나서 나는 조용히 하명이 있기를 기다리며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실국장회의에서 차관님께서 이 문제를 슬쩍 비치시자 모든 실국장님들이 반대를 하시어 차관님께서도 일단 손을 접고 계셨는데 대통령의 연두초도순시시계획을 세우게 되어 브리핑 자료를 만드는데 차관님께서는 대학교육협의회 문제도 포함시키라 하셨는데 각 국장님들은 물론 장관님까지 그 일을 탐탁하게 생각하시지 않았으나 차관님께서 하도 강력하게 주장하셔서 가까스로 짤막하게나마 대학교육협의회 창설문제를 끼워는 넣는데 까지는 성공은 하였으나 대통령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런데 1982년 2월 12일 박정희 대통령께서 문교부 순시시에 문교부 브리핑에서 대학교육협의회 문제가 나오자 대통령께서 의외로 대학교육협의회 문제에 큰 관심을 나타내셔서 모두들 깜짝 놀랐었고, 차관님과 나는 큰 기대를 하게 되었다.
그 뒤 1982년 3월 8일 아침 청와대에서 장관님에게 대학교육협의회를 빨리 추진하라는 전화가 왔었다. 그러자 장관님께서는 대학국장을 급히 불러 대학교육협회 정관을 빨리 만들고 추진하라는 지시를 하시고, 국장님께서는 나를 불러 대학교육협의회 정관을 내일 아침까지 만들라고 하시기에 나는 국장님께 이 문제는 주무과장이 만들어야지 대학재정과에 만들 성질이 아니라고 말씀드리니 내 말을 옳게 받아드려 대학행정과장에게도 정관을 만들어달라고 지시를 하시면서 대학교육협의회를 내가 제안했던 것이니 나도 같이 만들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밤을 새우다시피 하여 대학교육협의회 정관 초안을 작성하여 다음 날 3월 9일 국장님을 드렸고, 대학행정과장도 정관(안)을 만들어 국장님께 드렸는데 국장님께서는 오전 중 결재도 하시지 않고 두 개의 정관(안)을 검토하셨는데 대학행정과장은 당초부터 탐탁하게 생각지 안 해 마지못해 대충 정관을 만들었으나 나는 내가 발의하였던 대학교육협의라 그 정관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여 치밀하게 작성하였더니 결국 내가 작성한 정관(안)이 채택되어 내 안을 토대로 대학교육협의회도 대학재정과에서 추진하게 되었다. 그래서 즉시 결재를 올려 속전속결로 장관님 결재 까지 받았고, 준비위원장에 권이혁 서울대총장님을 내정하고, 차관님 지시를 받아 내가 서울대에 찾아가 권 총장님께 보고를 드리려고 하였으나 마침 총정님께서 계시지 않아 이현재 부총장님께 대학교 대학교육협의회의 발기 취지를 설명 드리고, 협조를 부탁드리고 왔는데 기자들이 낌새를 알고 나한테 계속 딸아 붙는데 나는 모르는 체 시침을 떼고 있다가 3월 15일 정식으로 기자들에게 대학교육협의회를 추진하며 3월 18일 발기준비위원회를 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차관님께서는 대학교육협의회의 초대 사무총장에 장인숙 전 차관님이 어떠냐고 하문하시기에 나는 두 말 없이 찬성을 하였고, 전문위원에는 구병림씨가 어떠냐고 하문하시기에 그 분 역시 적임자라고 말씀드려 그대로 추진하시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3월 18일 드디어 서울대학교를 비릇하여 수도권 주요대학총장님들 모시고 대학교육협의회 준비위원회를 만들고 권이혁 서울대 총장을 위원장으로 선출하였는데 각 언론기관마다 관심이 많아 모두 사진기자까지 동원하여 성황리에 끝냈다.
그리고 3월 26일 대학교육협의회 준비위원회가 개최되어 내가 작성한 대학교육협의회의 정관(안)을 심의한 결과 강신명 숭전대 총장님은 임원의 장관 승인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고, 유준 영남대학교 총장님은 사무총장의 권한이 너무 비대하다고 반대 발언을 하셨지만 사무총장에는 장인숙 전 차관님을 생각하고 있다는 차관님 말씀이 있자 그렇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며 만장일치로 정관을 확정하였다.
그리고 1982년 4월 2일 드디어 대학교육협의회 창립총회가 열려 박길진 원광대 총장님을 회장에, 장인숙 전 차관님을 사무총장에 선출하여 대학교육협의회가 정식으로 역사적인 발족을 보게 되었고, 사무실은 여의도의 사립학교연금관리공단 건물 일부를 빌려 쓰기로 하였다.
다만, 첫해에는 문교부에 계상된 예산이 없어 대학교육협의회는 각 대학에서 학생수에 비례하여 회비를 염출하여 운영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4월 4일 내가 장인숙 사무총장님과 구병림 전문위원님을 모시고, 오찬을 같이 하면서 대학교육협의회의 진로를 진지하게 협의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우여곡절 끝에 대학교육협의회는 발족되었으나 문교부에서는 대학교육협의회에 권한을 빼앗기는 것을 싫어하고, 내가 1983. 2. 28 충북대학교 사무국장으로 승진해 나가고, 정태수 차관님께서 1983년 7월 19일 자리를 물러나시니 아무도 대학교육협의회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대학교육국은 없어지지 않았고, 따라서 대학교육협의회는 내가 생각하던 대로의 역할을 하지 못했고, 장인숙 사무총장님과 구병림 전문위원의 노력으로 각 대학의 평가, 대학의 발전방향 연구와 건의 등을 하시면서 겨우 이름만 유지하고 있었었기에 나는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금년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교육부의 대학행정을 대학교육협의회에 이양하기로 결정이 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나는 이 기사를 보고 내가 꿈꾸던 대학교육협의회가 26년만에 드디어 제 모습을 찾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뛸 듯이 기쁘다.
아마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이래서 생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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